| 나는 입고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슬쩍 비추는 것으로 답했다. 물론 그것이 카키가 원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내 마음이 그것을 시켰던 것이다. 웃음이란 참 신비롭다. 아니, 감정을 얼굴에 나타내는 행위의 신비라고 해야하나. 표정이라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하지 않고 겉으로 나타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내 기분을 바로 이해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도구니까. 너무나 간편하다. 내가 미소를 보이자 맞은편 여자와 대화를 하던 카키의 말문이 약간 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걸까. 실은 카키에게서 호감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왠지 카키가, 혹은 나의 잠재의식에서든 어느 한 쪽이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느껴진다. "아까, 딴 생각한다고 소윤이 하는 말을 끄트머리만 들었거든. '드리웠잖아.' 아니 '드러웠잖아' 라고 했나? 아무튼 그렇게 끄트머리만 쪼금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응? 뭐라고?' 했더니 갑자기 입을 딱 다물고 그냥 고개 돌리는데… 내 기분이 더 나빠지는 거야." 여기까지 말한 희지는 화가 차오르는 건지 억울한 건지 모를 묘한 표정을 지으며 "아~ 답답해" 하고 말끝을 잇는다. 의진이는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 모른 채 멀뚱한 눈으로 희지의 그 모양새를 쳐다볼 뿐이다. 희지는 의진의 답을 바라지도 않는 듯 금새 말문을 또 연다. "저번에 잡지!" 희지가 손빠닥을 아차 하고 마주치자 쩍 하고 둔탁한 소리가 퍼졌다. "봄신상 특호… 3월호! 그것도 빌려줬어." 그리고는 머리를 비스듬히 숙여 골똘한 시선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린다. 한 손으로 머리를 슬쩍 움켜쥐고 생각하는 모양이 자못 진지하다. "아, 그래." 기어코 희지의 입이 트였다. "해수 프로필까지 갖다받쳤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 받았다구. 그런데 겨~우 말 하나 못 들어준 거 땜에 쌩 무시해 버리면‥ 그럼 나는 뭐가 돼?" 속내를 쏟아내자 이제는 또 다시 아차 한다. "아, 맞아. 미안." "응?" 희지의 돌발적인 사과에 좀처럼 떼어지지 않던 의진의 입이 열렸다. "소윤이가 어디에?" 의진은 소윤이가 지나가는 게 아닌가 했다. 그래서 희지가 돌연 사과를 표한 것인가 싶었던 것이다. 이에 희지가 도리질을 친다. "그게 아니라, 저번에 내가 펜 쓰고 안 줬지? 집에 있네 집에. 이렇다니까, 내가 깜빡깜빡 한다구." 희지의 얼굴에 부끄러운 미소가 배시시 내비치자 돌연 커진 의진의 눈이 의아함을 담는다. "아~? 어쩐지, 찾아도 없다했어." 그리고 의아함에 물들었던 의진의 낯이 이제는 화사하게 펴졌다. "실은~ 그거 찾느라 한 시간 정도 방 안이고 가방이고 막 뒤졌지 뭐야. 랄프 소크만인가? 그 사람이 했던 말을 아마 수없이 되풀이 했을 거야 그날. 너 한테 빌려준 걸 까먹다니…." 그리고는 씨익 지은 입술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어쨌든… 경문이 올 때까지 이야기나 하면서, 좀 기다려 주는 거다?" 2007040309 byecrazy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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