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장르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대중문학, 또는 상업성을 지닌 문학 등으로.. 비슷한 말로 요즘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순수문학이라는 것이 자아의 성찰이니 뭐니 하는 것을 구현하면 그 문학성을 인정 받고 있지만, 장르문학에게서 그런 성찰을 기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순수문학과 같은 성찰성을 기대하면서 장르문학을 봐야하는 것이 애초에 틀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보면 먼저, 추리소설의 경우 가장 핵심은 무엇인가를 보자.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은 어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그 책을 읽는다. 그 뚜렷한 목적이라는 것은, 등장인물의 대사가 가지는 코믹성이 아니다. 시를 읽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묘사도 아니다. 범인이 참회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다큐적인 이야기, 역시 아니다. 바로, 마지막 남은 열쇠가 부러진 시점에서 그 방문을 열어 물건을 훔쳐냈다면 그것을 과연 어떻게 훔쳐냈는가. 또 하나의 열쇠가 더 있었는가? 지문은 없는가? 따위의 목적을 두고 독자들은 추리소설을 읽는다는 것이다.
그럼 다르게 말해보자. 순수문학에는 추리성이 없으니 순수문학은 추리문학이 아니다! 이러면 좀 이해가 될 것 같다.
그리고 판타지. 판타지를 읽는 독자들 역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추리문학처럼 말이다. 날아다니는 고래를 타고 다닌다든가 마법을 쏘아서 산을 무너트린다든가 잘생긴 주인공이 혼자서 병사 천 명을 때려눕힌다든가. 말 그대로 독자들은 '환상'을 추구한다.
그러면 이것도 이렇게 말해보자. 환상성이 없는 순수문학은 환상문학이 아니다!
지금은 순수문학이 철저한 문학성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지키고 있지만 이것이 뒤바뀌게 되는 경우 심각한 반격을 당할 논리를 순수문학이 펼치고 있다. 이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현실이다.
이 문학성이라는 것이 단어를 구사하는 능력이라거나 하는 '필체'를 포함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필체가 장르문학 순수문학 모두 동일선상이 되는 시점이 오면 순수문학은 극심한 반격을 당하게 될 것이다.
순수문학의 정의라는 것이 현대에 이르러 참여문학까지 다 포함한 단어로 사용되고 또한 철학적, 자아성찰성이라고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글이라고 할 때 사실상 이런 진부한 내용은 필요가 없다. 책이라는 것은 항상 인간사회를 꼬집어 비판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시를 보면 단지 글자만 아름답게 꾸며도 기교파라고 한다. 물론 그걸 보고 시가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 어떤 진부한 내용을 담지 않아도 글자 자체가 가지는 아름다움만 있으면 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경우는 시에서 보이는 포용성을 가지지 못하고 각자 따로 떨어진 장르로 치부하고 있다.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끝내지만, 나는 결론적으로 장르의 구분은 필요하다고 본다. 독자가 책을 읽을 때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 선택의 편의를 위해서, 또는 작가가 글을 쓸 때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내용으로 흐르지 않고 하나의 명확한 주제를 가지기 위해서, 장르의 구분은 필요하다. 하지만 액션게임에다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라고 요구할 순 없다. 연애게임에다가 액션같은 조작이 안 된다고 불평할 수는 없다. 이미 게임이라고 하는 것은 각자가 명확한 장르의 구분을 가지고 있다.
문학 또한 그러하다. 각자가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막무가내로 아이가 쓴 것 같은 글을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그릇된 것이지만 어느 정도의 선까지 필체가 받쳐준다면 그것이 장르문학이라 하더라도, 자신과 닮지 않음에 순수문학이 타장르를 비꼴 수는 없는 것이다. 장르문학이면서 철학도 있고 아주 수준 높은 글이 나온다면 찬성이긴 하지만, 순수문학이면서 단순한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쉬우면서 또한 철학이 있다면 찬성이긴 하지만, 단순히 자신들의 요소가 하나 빠졌다고 해서 다른 장르를 비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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